[칼럼] 양곡관리법이 왜 문제인가?
- 김은진 원광대 교수
양곡관리법 개정이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다.
예전부터 국힘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했다. 국회 법사위에서 국힘당에 의해 가로막힌 양곡관리법 개정은 국회 농해수위에서 민주당과 윤미향 의원이 힘을 합쳐 본회의로 직회부를 하였다. 대체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은 왜 양곡관리법 개정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양곡관리법은 1950년 양곡을 관리 비축하여 국민식량의 확보와 국민경제의 안정을 기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이다. 이 법은 수십 차례의 개정을 통해 지금의 양곡관리법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양곡관리법의 주요개정은 WTO(세계무역기구) 출범(1995년) 이후 쌀 수입과 관련한 10년 단위의 재협상 때마다 쌀 시장개방을 위한 방향, 즉 쌀 수입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1995년의 개정은 WTO 출범에 대응해 이뤄졌다. 관세화가 유예된 미곡 등을 제외한 양곡에 대한 수입 제한 규정을 정비하고, 시장접근물량으로 수입되는 양곡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5년도에 시행된 개정은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의 진행에 따른 시장개방의 확대와 쌀 수입 재협상으로 인해 쌀수입이 증가하고 WTO 협정에 따라 한정된 보조금의 범위 내에서 정부가 매입하는 양곡의 양과 가격을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2015년의 개정은 2014년 쌀 시장개방이 결정됨에 따라 수입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시중 유통쌀 가운데 수입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특히, 그동안 밥쌀용 쌀이 수입되어 왔고 그 수입산쌀과 국산쌀을 섞은 혼합쌀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채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려지면서 혼합금지를 위한 규정 등을 신설하였다.
이렇게 양곡관리법의 목적이 왜곡되어온 개정의 결과가 지금 쌀문제의 주원인이다.
1970년대에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30kg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60kg이 채 되지 않는다. 이렇게 쌀 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 데도 매년 40만톤 이상을 의무수입을 하고 있다. 쌀이 남아돌고 쌀이 남아도니 쌀값이 떨어진다.
2022년 8월 15일, 20kg 기준 산지 쌀값은 42,522원으로 전년 수확기 53,535원 대비 무려 20.6%가 하락하는 등 정부가 쌀값 조사를 시작한 1977년 이후 45년 만에 최대 폭락하였다. 그런데 이 쌀값 폭락은 정부가 막을 수 있었다. 2021년 쌀값이 하락했을 때 법이 정한 대로 시장격리를 했으면 막을 수 있었으나 정부가 차일피일 미루다 2022년의 쌀값 폭락으로 이어진 셈이다.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의제가 되었고 2022년 10월 19일 발의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배경이 되었다. 상임위에서부터 진통을 겪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또다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2023년 2월 27일 최종안이 나왔고 3월 23일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개정된 양곡관리법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쌀값이 일정 범위까지 하락하는 경우 정부가 농협을 통해 일정량의 쌀을 사들여 시중에 유통되는 쌀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시장격리제도라고 말한다.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에서는 벼 재배면적이 늘어 나는 경우 매입을 안 해도 되는 조항을 새로 추가함으로써 시장격리제도를 완화하였다. 즉,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쌀을 사들여 시장에서의 유통을 줄여야 하지만 쌀 재배면적이 늘어나서 쌀생산이 늘어나는 바람에 쌀값이 떨어진 것이라면 정부는 매입을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조건을 완화하면서까지 어렵게 통과한 법이 현재 대통령 거부권 행사 1호 법안이 되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막으려고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건의서까지 제출한 사실도 공개되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정부는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이 2017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29만톤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다. 정부의 예상치에 기초해보면 쌀 의무수입량 때문에 공급과잉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법이 마치 쌀 과잉생산의 원인인 듯 윤석열 정부는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이는 외국으로부터 들이는 의무수입량은 지켜내고, 자국의 농민과 쌀농업은 망해도 된다는 식이 아니고서 무엇이겠는가.
농산물 시장개방과 함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었으나 우리나라의 식량정책은 소비자물가문제에 중심을 두고 있고 이것이 곧 농업정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생산이 담보되지 않는 식량정책은 있을 수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정책이 마련되어야 했으나 생산을 못하더라도 해외에서 수입을 통해 조달할 수 있으면 된다는 관점에서 식량정책이 마련되면서 농업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쌀값 폭락의 문제도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쌀에 주목해야 하는가? 쌀은 우리의 경제적 자립과 주권을 지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주와 정치적 자치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식량주권의 핵심이다.
'식량주권 지킴이_농민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민 총궐기 이모저모]도로 위 볍씨 뿌리며 대책수립 요구 (0) | 2022.09.08 |
---|---|
농민 기본법 청원 이벤트합니다! (0) | 2022.01.14 |
농민 기본법 청원, 함께해요~ (0) | 2021.12.24 |
사회대전환, 농업에서 시작하자!_ 전국 농민 총궐기 (0) | 2021.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