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로 반찬이 없을 때 밥상에 등장해서 든든하게 자리해주는 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은 김과 김파래속에 속하는 해조류를 종이형태로 얇고 넓게 펴서 말린 음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완도군이나 진도군, 부안군 그리고 보령시의 김이 유명합니다.
김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나라도 한국, 중국, 일본 이 세 나라 뿐이며, 기타 국가(대만 등)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김을 먹기 시작한 것은 기록상으로는 한중일 중 한국이 최초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봐야 한다. 김을 한문으로 해의(海衣) 또는 해태(海苔)라고 합니다. 김이 문헌상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로서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명나라 때 편찬된 박물사전인 본초강목을 보면 "신라의 깊은 바다 속에서 채취하는데,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따온다. 4월 이후로는 대어가 나타나 해치기에 채취할 수가 없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김 양식에 대한 최초의 문헌은 1424년에 집필된 경상도지리지에 김 양식의 기원이 나타납니다. 하동지역의 전래에 의하면, '약 260년 전 한 할머니가 섬진강 하구에서 패류를 채취하고 있던 중 김이 많이 착생한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붙어 있는 김을 뜯어 먹어 본 즉 매우 맛이 좋아서 그후 죽목을 수중에 세워 인공적으로 김을 착생시킨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김은 해태, 청태, 감태, 해의라고도 불렸습니다. 이 중 해태라는 명칭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사실 기록 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해태가 가장 늦습니다.
'김' 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1640년 김 양식에 성공한 김여익(金汝翼)[7](1606~1660)의 성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조18년(1640년경)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전남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해변에 표류해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보고 양식하기 시작하여 그 양식법을 널리 보급하였습니다 하여 그의 성(姓)을 좇아 ‘김’이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전라남도 광양시에는 그가 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곳인 김 시식지가 있으며 이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김 8g은 우유 한잔보다 더 많은 칼륨을 제공하며 과학적으로 입증된 놀라운 효능이 많습니다. 김에는 비타민 A, C, E 및 B(12)뿐마 아니라 칼슘과 같은 풍부한 영양 성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김 8g에 섬유질의 일일 권장량 섭취량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알짜배기 식품입니다.
º간 보호
김에는 많은 성분들이 치료에 효과가 있어 현재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것도 고려되고 있습니다.
º신경질환
김은 아라키돈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수리 및 골격근 조직의 성장을 촉진하고 신경 질환 치료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º심장 질환 예방
수용성 섬유, 펩티드, 지질, 미네랄이 풍부하여 고혈압이나 지질혈증, 산화 스트레스, 혈관 염증 및 과다 응고로부터 심혈관 조건을 향상시킵니다. 이는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º안티 바이러스
플로로타닌은 김이가지고 있는 슈퍼요소중 하나로 종양 바이러스 및 암세포에 대항할 수 있는 안티바이러스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º당뇨병 도움
폴리페놀은 혈당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간 속의 글리코겐 수치를 조절해 당뇨병 환자에게 도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