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글

관계가 깨진 밥상은 결국 똑같다.

날고 싶은 자작나무 2021. 9. 16. 20:06

김은진(우리밥상공동체 짓다 감사)

 

며칠 전 빵집을 개업한 선배가 있다. 그 선배네 가게에 들어온 손님 한 사람이 유기농 우리밀이 아니라 그냥 우리밀이라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나갔다는 글을 봤다. 이것이 바로 지금 현재 먹을거리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일까? 우리가 적어도 친환경 또는 유기농이라는 단어에 이토록 집착하게 된 것은.

 

 

 한동안 달걀로 인해 전국이 들썩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무려 친환경(!)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환경도 똑같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에서부터 속았다는 반응까지 다양한 반응을 봤다. 그 달걀에서 발견된 살충제가 이번에 문제된 살충제가 아니라 이미 38년 전에 생산과 사용이 중단된 것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친환경에서 살충제가 나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 달걀을 팔았던 단체는 생산자 관리를 더 철저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는 조합원에게 우리가 취급하는 달걀이 아니라는 단체문자를 보냈다. 추석을 앞두고 그 단체 사이에 매출이라는 면에서 희비가 엇갈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올 초 한 단체가 비교적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을 모델로 광고를 했다. 다른 단체는 요즘 인기를 끄는 한 방송에서 주인공(?)이 장을 본 매장이 자신들의 매장이라고 SNS에 한동안 도배를 했다. 많은 돈을 쓰고 광고한 단체와 그보다 더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장을 봄으로써 돈 한 푼 안들이고 광고를 한 단체, 어느 단체가 더 나은 걸까?

 

 이 땅에 아직 유기농인증이라는 제도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에도 많은 농민들을 알고 지냈다. 그리고 그 농민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종종 직거래로 샀다. 때되면 연락이 오고 그 연락을 받으면 아무런 갈등없이 그냥 샀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 농민이 어떻게 그 농사를 지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연락이 오던 농민들 중 대부분은 지금으로 치자면 친환경 내지는 유기농 농사를 짓던 분들이었고 또 몇 분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농민단체에서 일하는 내가 가진 특권이라면 특권이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 중 하나가 있다. 어느 해 해마다 고추나 고춧가루를 사는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연락해오던 분이 ‘올해는 병이 너무 심해서 약을 한 번 쳤는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그 고추를 사왔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병이 심해 약을 칠 수밖에 없어 속상하셨겠다는 위로를 보냈다.

 

 적어도 인증이라는 법제도가 없을 때는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생산해주는 농민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들을 언니, 오빠, 이모, 삼촌 때로는 아저씨라고 불렀고, 그분들이 사는 곳에 놀러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그분들이 농사지은 것이라면 무조건 믿을 수 있었다. 그분들이 더 잘 농사지을 수 있도록 친환경농사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법을 만들자고 했을 때 이제 막 돌지난 큰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다시 그 일을 한 것도 그런 믿음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제 그 자랑스럽던 일이 되돌리고 싶은 일이 될 줄 몰랐다. 그분들을 위한다고 만들어진 법제도는 어느새 그분들을 옥죄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법이 만들어진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인증’표시는 ‘사람의 말’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인증’표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해진다. 원래 친환경이나 유기농은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가, 더 나아가 삶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야 했다. 적어도 환경에 대한 부하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를 이어가면서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한 땀을 보는 것이라야 했다. 그러나 법제도는 그것을 시행하기 가장 좋은 방식으로 정해졌다. 농산물과 그 농산물을 농사지은 땅과 그때 썼던 물을 검사하고 혀용되는 물질이 나오면 인증을 주고 금지되는 물질이 나오면 인증을 주지 않거나 취소하도록 정해졌다.

 

 

 더욱이 종종 언론을 통한 폭로 아닌 폭로기사들은 친환경에서 무슨무슨 물질이 나왔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농산물과 더 나아가서 농민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은 더욱더 ‘인증’표시에 집착했다. 방송의 한 편에서는 끊임없이 각종 질병들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먹을거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강조했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기농을 말했다. 이제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 해결책의 하나로 ‘인증’표시가 있는 먹을거리를 먹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하나 낳아 잘 기르는 내 아이를 위한 엔젤마케팅에까지 이르면 ‘인증’은 특별한 내 아이를 위한 상품의 기준이 된다. 이쯤되면 이제 친환경이나 유기농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아직도 이땅에 많은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계층간의 갈등요소까지 되었다.

 

 법에서 허용하는 것만을 써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친환경 또는 유기농 ‘인증’은 그 허용된 것을 쓰기 위한 비용으로 생산비가 높아져만 가고, 그럼에도 언제나 의심을 받는다. 생산량을 늘려 소득이라도 조금 올리려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의심까지 받아가면서 그런 농사를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친환경 내지는 유기농 농사와 관행농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농민도 심심찮게 본다. 어디 그뿐이랴. 먹는 것이 비싸서는 안된다는 수십년 묵은 정책은 또 어떤가. 관행농은 관행농끼리 가격경쟁을 해야 하고 친환경은 친환경끼리 가격경쟁을 해야 한다. 거기다 수입농산물과의 가격경쟁까지 더해지면 농민의 자리는 결국 벼랑 끝이다.

 

 ‘친환경, 친환경 하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와 ‘친환경이라고 믿었더니 속았다’ 은 얼마나 될까? 그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깨지고 오직 사고 파는 구매자와 판매자일 뿐인 관계, 그 속에는 내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에 대한 존중은 없다. 의심으로는 밥상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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